본문 바로가기

이글루스

역사따라 삼천리(sstop21.egloos.com)

검색페이지 이동

사이드 메뉴

이글루스 블로그 정보

프레데닉 에드윈처치,변명과 고백,아르힙 주인지

앱으로 보기

본문 폰트 사이즈 조절

이글루스 블로그 컨텐츠

1 프레데닉 에드윈처치---화폭 가득한 노을
미국 미술사 초기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화가들이 있습니다.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혼합된 화풍으로 미국의 자연을 정밀하게 그렸는데 내용에 걸맞게 작품들의

크기도 대단합니다. 이 사람들을 묶어서 허드슨 리버 스쿨 (Hudson River School)이라고 합니다.

좋은 우리 나라 말로 옮겨 볼까 하고 몸부림을 쳐 보았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허드슨강파, 허든슨강 학파 ------ 그냥 가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소개했던 알버트 비어스타트도 이 그룹의 일원이었는데 막내쯤 되었습니다.

그 멤버들 중에 노을과 햇빛을 유난히 잘 그린 프레데릭 에드윈 처치 (Frederic Edwin Church)

따라 가 볼까 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Niagara Falls )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화가들 뿐 아니라 풍경화에 관심이 있는 화가들에게는 꼭 그리고 싶은

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디언 말로는 천둥소리라는 뜻이지만 매년 소녀를 폭포로 떠내려

보냈다는 전설을 듣고 나면 울음소리 같기도 합니다.

서양 속담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 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 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복하게 태어난 걸 말하는 것이죠. 처치 같은 경우입니다. 땅을 많이 가지고 있던

그의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미술에 대한 재능을 키우게 됩니다. 처치의 일생을 보면 돈 때문에

고생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돈을 모으는 재주가 탁월했습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은수저를 물고 세상을 떠난 행복한 화가였습니다.



(안개 걷힌 마운트 데저트 섬 fog off Mount Desert)


마운트 데저트 섬은 얼마 전 가장 아름다운 섬 10개 중에서 5위엔가 선정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중반 미국 화가들은 광활한 황야와 깊은 숲과 강을 정밀하게 묘사하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처치의 바다를 묘사한 솜씨도 아이바조프스키에 뒤지지 않습니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너무 깨끗해서 투명한 빛이 화면에 꽉 찬 느낌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파도소리가 작품 속에서 밀려 오는 것 같습니다.


(뉴잉글랜드 풍경 New England landscape)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때일까요? 눈의 흔적도 듬성듬성 보입니다.

그러나 맑은 바람이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그림의 오른쪽에는 한 남자가 스케치를 하고

있습니다. 처치 자신일까요? 그의 풍경화 속에선 곧 잘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데스의 오지 The heart of the Andes)


이 그림은 처치가 소위 대박을 터뜨린 작품입니다. 작품의 크기도 180cm x 300cm의 대작이었는데

처음 공개를 할 때 실내를 어둡게 하고 그림은 커튼으로 가려 놓았습니다. 그림 앞에 의자를

놓고 사람들을 앉게 한 다음 커튼을 걷는 순간 그림에 조명을 비추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진행

되었는데 사람들 앞에는 생생한 남미의 오지가 펼쳐졌습니다. 환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뻑뻑한 숲과 강, 구릉지대와 멀리 눈이 덮인 안데스 산맥까지 정밀하게 묘사된 작품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었습니다. 처치는 1인당 25센트씩 관람료를 받았습니다. 또 이 작품은 12,000달러에

팔렸는데 이 가격은 당시 살아 있는 미국 화가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돈 버는 기술도 그의 그림 실력만큼 탁월했습니다. 작품 전시회를 하면서 아내가 되는 여자를

만났으니까 처치에게는 의미가 많은 작품이었겠지요?


(에콰도르의 안데스 The Andes of Equador)


처치는 미국의 화가 중에서 남미를 처음 방문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2년간 에콰도르와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그는 스케치북을 이국적인 풍경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때 같이 간 사람 중의

한 명은 나중에 대서양에 해저 케이블을 깔아 유명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처치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는데 봄부터 가을까지는 자전거로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고 겨울에는

집에서 스케치북에 담긴 그림을 완성하고 판매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화가도 직업이라고 보면 직장 생활을 아주 체계적으로, 효율적으로 한 셈입니다.

아이 둘이 어려서 디프테리아로 죽는 불행이 있었지만 부부는 다시 합심해서 4명의 아이를 더 낳습니다.

합심이라는 말이 좀 어색하기는 해도 기록을 충실히 따라가면 이렇게 표현해야 어울립니다.

아이들이 좀 크자 식구 모두를 데리고 장장 18개월에 걸친 여행을 떠납니다. 유럽과 그리스를

거쳐 중동의 이스라엘까지 이르는 긴 여행이었지만 역시 이 번에도 그의 스케치북은 가득 찹니다.




(북극광 Aurora borealis)


오로라를 찍은 사진과 이 작품을 비교해보면 처치의 섬세한 기법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빛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처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발소 그림 같다고 하지만 그림 속에서 빛이 나오는 착각이 들게 하는 이발소 그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들을 보실까요?


(캐츠킬 풍경 Scene on the Catskill, creek, New York)



(난파 The wreck)


난파선 위의 붉은 구름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하거나 공포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구름 장 사이로 내리는 빛 때문일까요? 생동감 가득한 바다 풍경입니다.

자연을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했던 이유는 자연 속에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연은 그 안에 조화로움을 유지하고 있고 조화로움이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덕적 기준을

제공한다는 이론이 당시 미국의 화가들에게는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방법론이 등장한 것이죠.



(뇌운 Thundercloud)

한바탕 뿌릴 비를 가득 실은 거대한 구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밝은 앞의 풍경과는 달리 뒤 편의

하늘은 천둥과 번개를 담은 구름이 거대하게 서 있습니다. 이국적인 풍경이기는 하지만 무섭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이런 철학적인 주제에 변화가 옵니다.

그림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원인이 되는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자연과 생명은 투쟁과 갈등을 이겨낸 결과이기 때문에 자연이 조화로운 것 만은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전체는 조화롭지만 낱 개로 나누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폭풍 부는 산 Storm in the mountains)


앞 서 정밀하게 묘사되던 산의 모습이 굵은 붓 칠로 간단하게 정리되었습니다. 물론 하늘의 먹구름은

아직도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산과 구름과 빛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림의 제작과 판매가 순조로웠던 처치는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과 농장을 구입

합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림 작업을 하는데 얼마 후 오른손이 류머티즘에 걸리는 바람에 그림 그리는

일 보다는 농장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래도 엄청난 양의 조그만 유화 스케치를 계속했고

틈틈이 회고전도 개최하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열과 기술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황야의 여명 Twilight I in the wilderness)


하늘은 검붉은 핏빛이지만 무겁지 않습니다. 러시아 화가들의 풍경이 가지고 있는 무거움이

미국 화가들에게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환경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겠지요?





(여명 Twilight)


산 너머에 커다란 촛불을 켜 놓은 듯 합니다. 그림 한 가운데 있는 작은 집에는 불이 켜졌습니다.

불을 켜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을 ----.문득 쓸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는 구별되면서 힘들어 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월출 moonrise)


수평선 위로 달이 떠 있습니다. 혹시 이 그림 속에 이상한 점을 찾으셨는지요?

달의 위치나 크기로 봐서는 바다에도 달 그림자가 그려질 만 한데 바다는 온통 검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모습일까요, 아니면 달 빛을 건너 뛴 것일까요?

달 밝은 바다에 가봐야겠습니다.


(아침 morning)


장쾌한 풍경입니다. 가운데 인물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나무 지팡이 같은 것을 들고 떠 오르는

해를 향해 서 있습니다. 연출된 것이겠지만 서 있는 사람에게서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그래,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좋다 라는 말이 이 그림을 보다가 튀어 나왔습니다.

전혀 다른데 말입니다.


(미국 쪽에서 바라 본 나이아가라 폭포 Niagara falls from the American side)


(마운트 데저트의 해안가 coast scene, Mount Desert)


요즘 풍경화를 보면서 새삼 놀라는 것은 정지 되어 있는 물이 아니라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역동성을

한 순간에 낚아채서 화폭에 올려 놓는 대가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공부가 부족한 탓에 아직 많은 화가들을 알지 못한 점도 있지만, 테크닉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덥기도 하고 짜증도 나고 뭐 하나 신나는 것이 없는 요 몇 달 동안,

풍경화를 보면서 숨을 골랐던 것 같습니다.

풍경화를 더 보아야 할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스럽습니다.



(하늘에 걸린 국기 our banner in the sky)

참으로 절묘한 아이디어 아닙니까?

풍경화라기 보다는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 같습니다.

2 변명과 고백



(소꿉놀이 / Baby Doll's Dinner - Igler Gustave)


많은 손님들이 오셨다 가고 나면 정신이 없습니다.

대부분 그냥 가시는 분들이지만 가끔 딴지를 거시는 분들도 있고 부탁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블로그에 대한 고백변명을 할 까 합니다.


고백과 변명 중에 우선 변명을 먼저 하겠습니다..

변명은 나를 편하게 하지만 고백은 듣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저의 뻔뻔스러움이 아무래도 변명 쪽에 먼저 기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고백 / The Declaration - Filippo Indoni)


제가 소개하는 그림의 정보에 대한 변명입니다다.

저도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의 블로그에 가서 걸려 있는 그림들을 자주 보곤 합니다.

저의 경우,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림이 가지고 있는 내력, 예를 들면

현재 소장되어 있는 장소, 작품의 크기, 작품의 제작 기법, 작품 제목 같은 것을 표기할 까

생각했었는데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이유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는데 순전히 제 기준 때문이었습니다.

웹에서 그림을 볼 때 저는 그림을 먼저 보고 흥미가 있으면 제목, 작가 이름 순서로 쫓아

갑니다. 크기나 소장된 위치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작가의 연대를

따라가는 경우 작품의 제작 연대를 볼 때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것도 잘 보는 편이

아닙니다.

작품의 제목이 영어이면 그래도 괜찮은데 불어나 러시아로 되어 있으면 아주 당혹스럽습니다.

제목이 저에게 중요한 이유는, 제목이 주는 선입견 때문에 그림을 보는데 방해가 될 때도

있지만 저는 도움이 더 많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작품 소개를 할 때는 한글 제목만 턱 올려 놓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것도 잘 알려진 한글 제목이 있으면 그 것을 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제 입맛에 맞게

(물론 정확하게 하고자 노력은 합니다) 번역합니다. 내력까지 다 올리면 더 친절한 블로거가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도대체 그 쪽으로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가고 맙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작품의 제목을 너무 훼손할 까 봐서 한글 제목 옆에 영어 제목을 올리지만

사실 좀 껄끄럽습니다. 프랑스나 이태리, 러시아 화가들이 처음부터 작품의 제목을 영어로

하지는 않았겠지요. 결국 누군가 영어로 번역을 한 것인데 그 제목이 100% 맞는다고 제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써 놓고 보니까 변명치고는 참 빈약한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

게으른 탓이 제일 큽니다.


(청혼 / The Courtship - Filippo Indoni)


고백입니다.

도대체 자료를 어디서 가져오는가라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1년 반 전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쉬지 않고 10여권 넘는

미술관련 책을 보고 나니까 어떤 것들은 정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혼돈과 혼란 속에 서 있지만 말입니다. 기준이 구별되지 않은 것을 혼돈, 개체가

뒤 섞인 것을 혼란이라고 저는 표현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주 웹에 있는 미술관 나들이를 자주 합니다.

그림을 넘기다가 , 이 그림 참 좋구나. 제목이 뭐지? 작가는?’ 뭐 이런 식으로 제가 좋아

하는 그림을 찾습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구해 읽어봅니다.

어떨 때는 이야기와 그림이 잘 엮일 때가 있는데 간혹 그림과 작가가 따로 놀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쓰다가 쳐 박아놓은 글이 있습니다. 그림에 묘사된 주제들이 너무 좋아서 그림을

본 뒤에 작가 이야기를 따라갔다가 모두가 장삿속으로 연출된 주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옆에 작가가 있었다면 업어치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3주 정도 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었습니다. 미국 화가이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약한

작가 입니다. 기분이 나빠서 이름을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백하자면 제가 소개하는 작가는 철저히 제가 맘에 드는 화가들입니다.

물론 지난 번 앙리 루소 같은 경우는 별님의 요청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소개하는 기준도 없습니다. 그냥 시대를 왔다 갔다 할 것인지 아니면 뭔가 기준을

두고 소개를 할 것인지를 이번 휴가 때 고민을 해 볼 까 합니다.


그림을 보고 주절주절 이야기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시골음악회 / The rustic Concert - Filippo Indoni)

3 우르힙 쿠인지 --울크라이나의 음유시인



요즘 올 가을에 예정된 출장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모스크바를 들러 볼 궁리를 하는 중입니다.

초행 길, 그것도 혼자서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모스크바를 만난다는 것이 조금은 걱정스러워

요즘 자주 러시아 쪽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화가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르힙 쿠인지의 초상화 빅토르 바스네초프 Victor Vasnetsov)


지난 주말 이고르 그라바 (Igor Emmanuliovich Gravar)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는데 갑자기 저의

시선을 당기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정신 없이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다가 이고르 그라바 선생이

뒤로 밀리고 말았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렸던 아힙 쿠인지 (Arkip Kuinji)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라도가 호수 Lake Ladoga)


쿠인지를 이야기 하면서 자주 언급되겠지만 관객들이 그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워하는 것은

빛과 색상입니다. 앞에 있는 조그만 바위와 그 옆의 부러진 나무를 향해 강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느낌입니다. 물 속 돌들의 모습을 투명하게 묘사하다가 점차 푸른색의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하늘까지 전체가 하나가 되는 색의 펼침도 감탄을 자아 냅니다.

그의 집안은 원래 그리스 출신입니다. 쿠인지의 아버지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그나마도

그가 어려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친척집에 맡겨진

쿠인지는 일찍부터 옥수수를 팔거나 사진을 수정하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성장합니다.

유명한 미술가치고 어려서 부유했던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유명 예술가 초년 가난의 법칙이라도 만들어야 할 까 봅니다.


(바라암 섬에서 At the Valaam Island)


쿠인지가 라도가 호수로 여행을 하면서 그린 연작 중의 하나입니다.

바닥에 뒹구는 나무와 컴컴하고 뻑뻑한 숲, 화강암 돌 덩어리에 눈을 맞추다 보면 숲 어디선가

조용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러시아의 깊고 깊은 전설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전시회에 출품되면서 신문들은 쿠인지의 재능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합니다.


(북쪽 The North)


이 작품도 연작중의 하나입니다. 아마 호수에서 바라 본 북쪽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너머에는 쿠인지의 상상과 추억이 있지 않았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살 던 사택 담 너머로 벌판을 가로질러 끝 없이 이어진 길이 있었습니다.

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너무 궁금했었습니다. 지금도 길게 뻗은 길을 만나면 길을 멈추고

그 길의 끝을 눈으로 따라가곤 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밤 Ukrainian Night)


이 작품에는 시와 같은 느낌이 가득합니다. 전형적인 우크라아나 시골집에 밤이 찾아 왔습니다.

조그만 언덕 위에 마을이 서 있고 포플러 나무는 위로 뻗어 있습니다. 고요와 침묵이 만상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 빛은 얼마나 맑은지 마을의 길과 집을 환히 비추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파리의 만국 박람회에 출품되었을 때 같은 러시아 화가들로부터는 환호를, 외국의

비평가들로부터는 대단한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운 좋게도 친척의 친구 중에 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서 쿠인지는 기초교육을

받습니다. 역시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어서인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벽, 울타리, 자투리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상페테스부르그 예술 아카데미 (Academy of Arts)

도전하지만 실패합니다. 두 번째도 실패하지만 끈질긴 이 젊은이의 열정에 예술 아카데미는 그를

정원 외 학생이라는 조건으로 문을 열어줍니다.


(우크라이나 저녁 Evening in Ukraine)


위의 그림과 같은 구도입니다. 여기서도 석양 빛이 동네를 감싸고 있습니다. 빛에 의한 색깔의

변화로 전체를 구성하는 그의 능력은 화실에서 끝없이 그가 반복적으로 실험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얻은 테크닉으로 우크라이나 지역의 달 빛 어린 밤과 그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탁월하게 묘사했던 그였습니다.


(자작나무 숲 A Birch Grove)


자작나무는 러시아 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라고 합니다. 풀 밭에 내려 앉은 부드러운 햇빛과

숲을 돌아 멀리 사라지는 길 위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관객들은 몇 시간씩 이 작품 앞에 서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적이면서도 정형화된 기법이지만 표현력이 풍부한 이 그림은 그가 늘 추구했던, 표현력이

가득 찬 구성이 나타나 있습니다. 끝없는 스케치를 통해서 나무와 풀 밭을 완벽하게 배열하고

색깔의 구성을 통하여 작품을 완성한 것이죠. 햇빛이 전시관 벽을 뚫고 그림 뒷면에 닿아있는

느낌 때문에 관객들은 그림의 뒤로 돌아가서 다른 빛이 있는지 확인했다고 하니까 대단한 반응을

얻은 것은 확실합니다.


(자작나무 숲 A Birch Grove)


같은 주제의 그림인데 위의 작품은 1879, 아래 그림은 1901년에 그려진 것입니다.

20여년이 넘는 세월이 두 그림 사이에 놓여 있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느낌은 거의 같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그는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대가들의 작품도 공부하고

많은 친구들도 만듭니다. 그러나 귀국 후 그의 작풍을 보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보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이 가는 길이 맞는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것 아닐까요. 더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는 말이 원래 가지고 있던 뜻과는 전혀 관계없이 소통

되고 있는데, 그래서 쿠인지가 더 근사해 보입니다.


(드네프르강의 달빛 어린 밤 Moonlight Night on Dneper)


어떠신가요? 혹시 창문을 열고 밖을 직접 바라보는 느낌 아닌가요?

이 작품으로 쿠인지는 대중들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중앙에 떠 있는 달은 점차 옮겨가며

빛을 뿌리고 있습니다. 작품 전체에 깔린 낭만을 어떤 말로든 표현하고 싶은데 도대체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어휘력의 빈곤을 절감합니다.

일반적인 기법으로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시의 평가입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여기에는 고집스러운 그의 노력이 밑에 깔려 있습니다. 그의 화실은 일종의

연구소 같았는데 그 연구소에서 색깔의 성질, 그림자의 성질, 자연과 색상과의 관계에 줄기차게

매달렸고 마침내는 이런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죠.


(다리알 협곡 – The Darial)


이 작품에서도 달 빛은 작품 전체에 쏟아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를 음유시인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지난 번 소개했던 아반 아이바조프스키의 작품 다릴 Daryal 협곡

같은 협곡이 아닐까 싶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렸지만 같은 곳이라는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제보를 기다려볼까요?



(저녁의 엘브루스 산 Elbrus in the Evening )





(엘브루스 산 The Elbrus)






(엘브루스 산 The Elbrus)


말년에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합니다. 특히 크리마아 반도와 코카시아 지방의 산들이 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달빛과 햇빛에 빛나는 눈 덮인 산봉우리들을 색채 조합의 대가였던 그가 지나칠 리

없었겠죠. 엘브르 산에 대한 그의 감탄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크리미아 반도의 바다 The Sea. The
Crimea.)


이렇게 시원하고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화면의 대부분을 푸른색으로

처리했지만 조금도 단조롭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이바조프스키의 바다가 쉬지 않고 꿈틀대는

것이었다면 쿠인지의 바다는 푸른색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합니다. 이 그림을 거실에 걸어 놓으면

공기청정기와 기분청정기 두 가지 노릇을 다 할 것 같습니다.

이왕 시작한 바다 그림인데 그의 작품을 아무 생각 가지지 말고 더 보기로 하죠.

물론 푸른색을 조금씩 변화시켜가며 바다와 하늘과 바람까지를 묘사한 그의 솜씨는

보너스로 보시면 됩니다.





(바다 The sea)





(바다 The Sea)


56세가 되던 해 그는 아카데미에서 풍경화를 지도하는 교수가 됩니다. 그는 학생들이 그가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기술뿐만 아니라 창의력을 위한 적극적인 자세도 배우기를 원했고 실제로

대단히 열성적으로 지도 했습니다. 학생들도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항하는 학생들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이틀간 집에 감금된 후에 교수직을 박탈

당합니다. 그래도 그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을 계속 지도합니다. 멋지십니다, 쿠인지 선생님 !!






(가을 진흙 길 Autumn Slush)


초기에 그린 이 작품을 보면 쿠인지의 심성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습니다. 밤새 가을 비가

내렸겠지요 어머니와 아이는 시장에라도 다녀오는 걸까요.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진창이 된

길을 발자국을 깊게 내면서 언덕 길을 오르고 있습니다.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동양화처럼 여백에 가깝게 처리한 작품 속에는 사람을 보는 그의 따듯한 눈 길이 있습니다.






(초원 Steppe)


교수직에서 해임 된 다음 해, 자신의 비용으로 젊은 화가들을 해외로 보낼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하여 아카데미에 10만 루블을 기탁하고 또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단체를 만들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림과 돈, 자신 소유의 크리미아 반도에 있던 땅을 모두 기부합니다.

이 모두가 모두 젊은 화가들을 위한 배려였습니다.

초원을 보면서 아르힙 쿠인지의 말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중년부터 말년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침묵으로 세월을 보내 던 그에게 친구들이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 --- 예술가는 가수처럼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야 하지. 그러나 목소리가 더듬거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바로 은퇴한 후 자신을 숨겨야 해. 그 동안 나는 명성을 쌓아왔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했고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내 목소리가 더듬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은 쿠인지이라는 화가가 있었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나는 영원히 쿠인지로 남고

싶어 ----“

실제로 그는 가끔 친구들을 화실로 초대해서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곤 했는데 하나 같이 친구들의

넋을 놓게 한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스스로에 대해 경계했던, 깔끔한 그의 모습에 고개를 숙입니다.



(드네프르 강)





























포스트 공유하기

썸네일
역사따라 삼천리님의 글 구독하기
덧글 0 관련글(트랙백) 0
신고
맨 위로
앱으로 보기 배너 닫기

공유하기

주소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할수있습니다.

http://sstop21.egloos.com/m/6336648
닫기

팝업

모바일기기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 ios인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해주세요.

덧글 삭제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비밀번호 확인

게시글 신고하기

밸리 운영정책에 맞지 않는 글은 고객센터로
보내주세요.

신고사유


신고사유와 맞지 않을 경우 처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명예훼손 등은 고객센터를 통해 권리침해
신고해주세요.
고객센터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