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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전칼라스넵사진,그림속에 숨어있는암호,따뜨한 눈을가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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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00년전 칼라 스넵사진--브뢰겔
밀레 이야기를 쓰고 난 후 자주 밀레와 비견되는 브뢰겔이 어느 구석에선가 나를 노려 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밀레가 농부들의 삶에 녹아 들어 갔다면, 브뢰겔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바라 보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브뢰겔에 대한 자료는 아주 빈약해서 많은 사람들의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 애를 먹게 됩니다. 그나마 작품에 서명과 날짜를 기입했던 그의 습관 때문에

그의 연표는 그럭저럭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연표는 저의 관심사가 아니기 때문에

크게 서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자화상)


원 제목은 화가와 구매자라고 되어 있는데 화가를 브뢰겔 자신의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는 견해가 많고 현재까지는 그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눈 속의 사냥꾼)


브뢰겔은 계절이라는 연작을 그렸는데 총 6점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5점뿐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눈 속의 사냥꾼이라는 작품입니다.

푸른빛 흰색이 너무 차갑게 보여서 그림 속에서 칼날 같은 겨울 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차갑게 겨울을 그린 화가는 아마 브뢰겔이 유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는데, 이 그림이 그려진 1565년은 지구의 역사 중에서 소빙하기였고 이 그림이

확실한 그 증거라는 과학자들의 주장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대단한 과학자들입니다. 나중에 풍경화에 그려진 구름을 보고 날씨를 예측했던

기상학자들의 이야기도 한 번 써 볼 생각입니다.

브뢰겔의 많은 그림이 그렇듯이 이 작품에도 여러 개의 장면이 동시에 펼쳐져 있습니다.

개와 함께 돌아 오고 있는 사냥꾼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느끼게 하는 화톳불과 그 주변 사람들인데 븨뢰겔은 한 작품 안에

여러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 놓는 비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태어났다면 드라마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브뢰겔이 싫다면 할 수 없지만요

(수확하는 사람들)


이 작품도 앞 서 말한 연작 중의 하나입니다.

새참을 먹는 사람들이 있고 그 중에 한 명은 너무 피곤 한 것이지 아니면

낮 술에 취한 것인지 나무 그늘에 누워 버렸습니다.

또 몇 명은 아직도 못 끝 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동안 놀다가 밥 때가 되니까

밥 값이라도 할 요량으로 열성을 보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 농부들의 모습은 피곤해 보이고 그 피곤은 주위를 둘러 싸고 있는 황금색

벌판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입니다.

브뢰겔은 고향의 농부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서 농부로 변장하고 그들 가까이 가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얻은 별명은 농부 브뢰겔 또는 괴짜 브뢰겔이었습니다.




(수확)


브뢰겔이 미술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이름표 중의 하나는 풍경화를 그린 최초의 서양 화가

라는 것입니다. 물론 풍경을 그린 화가는 그 전에도 많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배경이었고

풍경 자체를 목적으로 화가는 브뢰겔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린이 놀이)


이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이 그림은 당시 아이들이 하던 놀이를 그린 것인데 대체 몇 가지 놀이나 그려져

있을까요? 정답은 230명이 등장해서 91가지의 놀이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몇 번이고 세어 보고자 했는데 항상 중간에서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사진을 찍듯이 꼼꼼하게 이 모든 것을 캔버스에 옮겨 놓은 놀이 종합 선물 세트

브뢰겔이 우리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브뢰겔 선생님 !!



(플랑드르 속담)


비슷한 작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당시 플랑드르 지방에서 사용되고 있던

속담을 하나의 화폭에 몰아 넣은 것입니다. 몇 개의 속담이 들어 있을까요?

저는 그 쪽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지만 100개가 넘는 속담이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표현 되어 있는 속담 중에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상당수라고 하니까,

이 작품은 속담 모듬 세트가 되는 셈입니다.



(농부 결혼식)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저는 우리나라의

윤복 이나 김홍도가 떠 오릅니다.

당대의 풍경을 이렇게 세세하게, 그러나 유머를 가지고 그려낸 공통점 때문입니다.

아이는 이미 접시 하나를 차지하고 남은 음식을 혀로 핥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악기를 불던 악사는 배가 고팠는지 불던 악기를 멈추고 지나가는 음식 상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술도 한 잔 했는지 얼굴은 불게 달아 올랐는데 얼굴 표정은 여기 한 그릇 더!’

하는 것 같습니다. 화관을 쓰고 있는 신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는데,

솔직히 가장 예뻐야 할 신부가 가장 예뻐 보이지는 않습니다.

문으로는 계속 사람들이 밀려들어 오고 있고 장내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득합니다.

가난한 농촌의 결혼식 장면입니다. 그러나 가슴 한 곳이 아려오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음식 상 위에 음식 종류는 죽과 우유, 그리고 맥주 뿐입니다.

그건 그렇고 신랑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결혼 댄스)


(농부들의 춤)


결혼식이 끝나고 음식과 술도 몇 잔씩 걸치고 난 후 입니다.

모두들 나와서 축하 댄스 파티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악사들이 신나게

연주하고 있고 모두들 흥겹게 돌고 있습니다.

농부들의 춤에서도 악사 옆에는 벌써 취한 사람이 있고 한 구석에는 뽀뽀를 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림을 드려다 보고 있으면 저도 그 자리에 있는 듯 합니다.

아니 그 중에 한 명은 저의 모습입니다.


(이카루스의 추락)


이카루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크레타섬에 갇혀 있다가 아버지가 새의 깃털을

모아서 날개를 달아 주어 섬을 탈출하게 됩니다. 너무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이카루스는 하늘 높이 날다가 날개를 붙였던 밀납이 녹는 바람에 그만

바다로 추락하게 됩니다. 어른들 말은 안 듣는 아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신화입니다.

혹시 그림에서 이카르스를 찾으셨는지요?

이카루스를 주제로 한 많은 그림들이 이카루스를 전면에 내 세웠지만 여기서는 물에 빠진

다리로 간신히 이카루스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몇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섞여

있습니다. 세상사에 관심 없이 오직 밭을 가는 농부, 고개를 쳐 박고 온 정신을 낚시에

쏟고 있는 낚시꾼, 그리고 정체 불명의 풍경들 ----

풍경은 브뢰겔이 이탈여행을 하면서 머리 속에 넣어 두었던 나폴리 항의 모습과 알프스를

뒤 섞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그림에고 몇 개의 심오한 상징이 있지만

이 상징을 알고 나면 그림이 너무 맥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목은 이카루스의 추락이지만 브뢰겔은 그냥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겨울 풍경)

브뢰겔을 검색하면 두 개의 이름이 나타납니다. BruegelBrueghel인데, 같은 사람입니다. 40대 중반에 브뢰겔은 자기 이름에서

h를 지워 버립니다. 이유는--- , 저도 모릅니다.

추정하면 제 친구 중에 진영이가 자기 이름을 지녕이라고 쓰곤 했는데 아마 같은 의미 아닐까 싶습니다.

브뢰겔은 아내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는데 아내는 그의 미술 선생님 딸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차이였느냐 하면 브뢰겔이 미술 선생님 집에 갔을 때 그 딸이 어려서 늘

업어주고 얼러주고 했었습니다. 물론 같이 놀아 주곤 했는데 그 딸이 크자 그녀와 결혼 한

것입니다. 의지가 굳건하다고 해야 할지 ------.

그의 작품이 지나치게 농촌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사회에 대해 저항한다고 보는 못된 사람

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농촌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교회의 권위에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브뢰겔은 죽기 전에 이 문제를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로부터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의심이 갈 만한

작품들을 불태워 버리라고 아내에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경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둘러 싸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이 작품처럼 성스럽지 않고

진지하지 않은 작품은 없을 것입니다.

예전 이문구 선생의 작품 중에 우리 동네 김씨 박씨,---‘ 하는 시리즈가 있었는데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브뢰겔의 우리 동네 김씨 시리즈를 보는 것 같아 유쾌합니다.

물론 브뢰겔이 아주 성화를 안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벨탑)


브뢰겔이 우리에게 남겨준 모듬 세트들400년 전 그가 찍은 그 시대의 칼라 스냅 사진입니다.

안 그런가요?

2 그림속에 숨어 있는 암호--상징주의 작가들

잠깐 그림 한 점을 보실까요?
샤반의 희망 이라는 작품입니다



혹시 이 그림 속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숨겨 놓은 상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가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정말 어색하구나 하는 느낌이 제일 먼저 다가왔습니다.

그리스의 신전 같은 곳에 한 소녀가 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 자세도 어정쩡하고

뭘 이야기 하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소녀가 들고 있는 나뭇가지는 올리브 가지인데 희망을 상징하고 있고 소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아침 노을과 신전 중간중간 피어 있는 꽃들도 역시 희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당시 보불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포함된 작품인데,

설명을 듣지 않으면 좀처럼 상징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을 끝없이 머리 아프게 하는 사람들 바로 상징주의 화가들입니다.



(왠지 희망보다는 절망이 더 느껴지는 같은 제목의 샤반의 다른 작품입니다 )


샤반은 아버지가 광산기계 엔지니어였습니다. 당시로서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죠.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심한 병을 앓고 난 후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얻을

작정이었지만 이태리 여행을 하고 난 뒤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그 뒤로 샤반은 상징주의의 대표적인 화가가 됩니다.



(죽음과 처녀들)


이 작품에서 상징을 찾으셨는지요?

이건 너무 빤한 상징입니다. 죽음을 뜻하는 검은 색 옷차림의 사내가 쓰러져있고

역시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여신을 연상케 하는 처녀들이 즐거운 모습으로

있습니다. 이 작품 역시 희망, 평화와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샤반)


원래 상징주의는 문학에서 먼저 시작했습니다. 랭보나 베를린 같은 작가들이 화가의

작품에서 어떤 상징을 찾았다고 하는 순간 그 화가는 상징주의 화가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리의 가치를 과학에서 찾고자 했던 일군의 사람들이 과학이 진위를

판단해 줄 수는 있지만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딘가에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을 암호화 담아 표현 한 것이

미술에서 상징주의의 시작이었습니다.

마치 암호를 숨겨 놓듯이 화가는 상징을 그림 속에 숨겨 두었고 관객은 그 것을

찾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상징주의 화가들의 주제는 삶과 죽음,, 희망,

불안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해변의 처녀들)


이 작품에서 처녀들은 모두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전주의 입장에서 보면

통일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나른한 꿈의 세계를 묘사했다고 보면

이 작품이 나타내고 있는 모습이 이해가 됩니다.

샤반은 공공장소에 그린 벽화로도 유명한데 단순하지만 정확한 사실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상징주의 화가들에 비해 그래도 우리에게 친숙한 편입니다.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모로는 샤반과는 정반대의 기법을 사용한 화가입니다.

샤반이 단순하지만 사실성을 강조한 반면 모로는 치밀하게 작품을 그렸지만 내용은

신화나 성서와 관련된 주제를 즐겨 사용했습니다.

모로 역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많은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로도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합니다. 그가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대학을 졸업한 후였습니다.

스핑크스를 이렇게 요염하고 예쁘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모로 뿐일 것입니다.

그림 아래 쪽에는 이미 스핑크스에 의해서 죽은 사람의 발이 보입니다



스핑크스의 눈은 요염하지만 그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를 바라보는 눈은 욕망으로 타고 있는 듯합니다.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의 가슴 아래를 보고도 욕망이 끓어 올랐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웃고 말았지만 이 작품의 주제를 말한다면 욕망과 죽음 정도이겠지요.



(프로메테우스)


이 작품도 역시 신화에서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주었다는 죄 때문에

묶인 채로 간을 독수리에게 내어 주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인데 그가 어딘가를

쳐다보는 눈길은 끝없는 의지와 투지의 그것입니다. 모로가 프로메테우스의 눈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얼굴과 몸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읽혀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카라바조 같았으면 육체의 고통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거나 이을 악 문 모습의

프로메테우스를 그렸겠지요.

나중에 모로는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가 되었고 그의 제자 중의 한 명이 앙리 마티스입니다.

모로는 교수로서도 훌륭했던 모양인데, 주입식 교육보다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재주를 파악하고 특기를 살려주는데 일가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거나 모로는 관객들에게 강한 호기심을 주는 작품을 그리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의 작품이 완전히 이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그런 점에서 저는 모로의

작품을 볼 때마다 캔버스 앞에 앉아서 암호를 이리 저리 궁리하는 그의 모습을

떠 올리곤 합니다. 좀 귀엽다고나 할까요 --- 모로 선생님, 죄송합니다.

어떤 자료에서는 평생 8,0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고 하는데 50년 정도 그림을

그렸다고 하면 1년에 150편이 넘는 작품을 제작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맞는 이야기일까요?



(선인장 인간)


상징주의 화가들 중에 르동만큼 특이한 그림을 그린 화가도 없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양자를 가는 등 그의 유년 시절이 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것이 나중에 그의 작품에 영향을 줍니다.

건축가였던 아버지 권유로 건축가 시험을 보지만 불합격 하면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집안이 넉넉했기 때문에 르동은 작품을 개인 취미 정도로 시작했는데 식물학자와도 친하게

지내면서 거미라던가 식물과 관련된 그림 그리고 눈()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합니다.



(눈 풍선)


하늘로 향한 큰 눈은 슬프기도 하고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자 하는 눈 같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르동의 마음이 풍선에 달려 하늘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물론 섬찟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입니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을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겠다라는 그의 말은 작품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 눈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즉 모호함이 특징인데

그의 작품 울고 있는 거미를 보면 몸통은 거미인데 얼굴은 사람입니다.

이 정도 되면 웬만한 관객들은 그의 암호를 푸는데 두 손을 들게 됩니다.

선인장 인간도 같은 류의 작품입니다.

초기에 석판화나 초크로 작업을 하던 르동은 색깔이 들어간 유화를 그리면서

작품의 내용이 달라지게 됩니다.



(감은 눈)


눈을 감고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요?

생각하는 것이 아니면 무언가에 도취되어 있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속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슬픔을 온 힘을 다해 참고 있는 걸까요?

저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지난 번 침대에 누워서 이 작품을 한 참 드려다 보고 있으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난 뒤의

모습 같이 느껴졌습니다. 달리가 르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말한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르동은 나중에 꽃과 정물로 주제를 옮기면서 더 이상 암호를 넣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화병)




(화병 속의 꽃 )


(오필리어)


미술사에서는 15년 정도 상징주의 화가들의 시대가 있었다고 하지만

무 자르듯 연표를 만드는 일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끝없이 상징을 숨기는

화가와 그 것을 찾아 내던 시인들 사이에서 저 같은 얼치기 관객들은 머리만 아플 뿐입니다.

3 따뜻한 눈을 가진 화가--밀레

요즘 인상파 화가들을 꼼꼼히 드려다 보는 중입니다.
저에게는 깍두기 형님들처럼 기억에 남아 있는 화가들이죠.

그러다가 의외로 밀레의 만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밀레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밀레는 지평선 화가, ‘신과 성인이 등장 하지 않는 종교화를 그린 화가로도

불립니다. 그가 남긴 명작들을 중에는 지평선이 묘사된 작품이 많기 때문이고

그의 작품이 어느 종교화 못지 않게 경건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동네 신부님의 지도로 부터 시작된 그의 미술 공부는 처음에는 초상화에

집중되었던 것 같습니다. 살롱에 입선한 작품도 초상화였고 그 후 초상화 화가로

밀레는 널리 알려집니다.

초기의 밀레가 그린 초상화들 입니다.



33세가 되던 해 살롱 전시회에서 성공을 거둔 밀레에게 그 다음 해에 당시 프랑스 정부는

그의 키질하는 사람이라는 작품을 1,000프랑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구매를 합니다.

밀레는 이 돈을 가지고 첫 번째 아내와 사별 후 재혼한 두 번째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으로 이사를 갑니다.



(키질하는 사람)


바르비종은 파리가 가깝고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 쪽에는 그 유명한 퐁텐블로 숲이 붙어 있었고 또 다른 편에는 샤이 들판이 어깨를

붙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많은 화가들은 퐁텐블로 숲을 찾아 그림을 그렸지만

밀레는 벌판으로 나갔습니다.

밀레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붓 터치로 농민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했지만

그의 작품은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파리에서 가져왔던 돈도 점차 떨어졌고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이틀을 굶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와의 사이에 9명의 아이를 낳았으니까 ----, 뭐라고 할 말은 없습니다.

아이를 이삭 줍듯이 낳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납니다.


(양치는 소녀)


이 작품에 대한 첫 느낌은 평화로움입니다. 뜨개질을 하는 소녀의 어깨 너머로는

아스라한 들판이 펼쳐 있고 머리 위의 태양은 구름 사이에서 빛을 사방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완벽한 안정감입니다. 왜 밀레의 작품을 시정이 어려있는 경건함

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괭이를 든 사람)


이 작품은 밀레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 의미가 대중들에게 달리 읽혀진 작품입니다.

나는 태어난 이후 전원을 본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본 것을

그릴 때 나는 가장 잘 그릴 수 있다 라는 밀레의 말을 기억한다면

이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는 농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은 거대한 산업혁명의 물결이 휩쓸고 있는 중이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 들었습니다. 물론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죠.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의 시대상과 맞물려 괭이를 든 사람은 도시로의 이동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밀레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나 이 사람은 오랫동안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하긴 손 떠나면 더 이상 제 자식이 아닌 것이 어디 미술뿐이겠습니까--.




(이삭 줍기)

추수를 하고 난 뒤에 떨어져 있는 것을 줍는 행위는 당시 사회에서도 가장 하층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밀레는 세 명의 여인을 아주 당당하게

화면에 배치하여 완벽한 장면을 연출해 냈습니다. 여인들의 어깨에는 따듯한 햇빛이

비추고 있고 그 너머로는 황금빛 벌판이 펼쳐 있습니다. 푸른색 두건을 쓴 여인은

허리가 아픈지 손이 허리에 얹혀 있습니다.

이 작품은 밀레가 노동자들의 어려움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었다고 보는 견해에

저는 손을 번쩍 들고 싶습니다. 세 명의 여인을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3여신을 나타냈다고 보는 견해는 너무 억지스럽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상징으로 보는 것도 병은 병이지만 간혹 그렇게 상징으로만 보아야 하는

작품과 작가들도 있습니다. 다음에 날을 한 번 잡고 그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죠.


(쉬고 있는 추수하는 사람들)


밀레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작품이고 제작을 하는데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작한 날짜를 적은 유일한 작품이자 그에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실하게 가져다 준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만종)


이 작품을 제가 처음 본 것은 제가 다니 던 국민학교 앞 이발관이었습니다.

나중에야 밀레도 알게 되고 작품의 이름이 만종인 것도 알았지만

나란히 걸려 있던 돼지 그림과 별 차이를 몰랐습니다.

얼마 전부터 만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떠 돌고 있습니다.

내용은 부부가 기도하고 있는 발 밑에 놓여 있는 감자 바구니가

원래는 두 부부의 죽은 어린아이를 담은 관이었는데 밀레 친구가 그 그림을

보고 너무 참혹해서 바꿀 것을 요청했고 밀레는 감자 바구니로 대상을

바꿨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어린아이를 담은 관이었다면 이 광경은 너무 참담합니다.

아마 이 이야기는 살바도르 달리 때문에 나온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 그림에 매혹되었던 달리는 만종에 대한 분석을 밀레의 만종에 대한 비극적 신화라는

책으로 펴냈는데 우리가 이 작품에서 느끼는 마음의 평화를

그는 억압된 성적 충동으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지 못해서 무엇이 억압된 성적 충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참 대단한 달리입니다.

한참을 드려다 봐도 억압된 성적인 충동을 상징하는 또는 짐작할 수 있는 단초를

찾을 수 없는 저 같은 신참들에게 달리는 정말 무섭습니다.

그가 주장한 것 중에 하나가 부부는 땅에 아이를 묻고 기도 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에 X-ray 투사를 줄기차게 요구했고 마침내 작품에 대해 X-ray 검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조사 결과, 바구니가 있는 위치에 처음에 관과 같은 기하학적인 도형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게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밀레가 관을 그렸다가 바구니로 바꾼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떠다니는 이야기는 관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밀레만 알고 있겠지요.



(오후의 휴식 밀레)




(오후의 휴식- 고흐)




(씨 뿌리는 사람 밀레)





(씨 뿌리는 사람 중 일부 고흐)




고흐는 밀레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밀레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거나 동일한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모사라기 보다는 밀레에게 바치는 고흐의 헌사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 중 일부는 www.blog.empas.com/bebede 님 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따뜻한 눈으로 농민들을 바라보았던 밀레의 작품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행스럽게도 말년에 밀레는 금전적으로도, 화가로서의 명예도 모두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늘 사람에 대해 따뜻한 눈 길을 거두지 않았던 그에게

신께서 내려주신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가을)





(램프 옆에서 바느질 하는 여인)



(빵 굽는 여인)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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